본문 바로가기
책 리뷰

<수브다니의 여름휴가> 김초엽 소설 리뷰 감상평 / 스포

by iambluee 2024. 4. 24.

 

 
여름은 아직 멀었지만 휴가가 필요한 요즘, 잠시나마 마음 쉴 곳을 찾는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줄 작품을 소개합니다. 김초엽의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라는 소설은 누군가가 나에게 편지를 써온 것 같은 새로운 느낌을 줍니다. SF장인 답게 인공지능 로봇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단순히 로봇과 인간의 사랑이나, 로봇이 정체성을 찾는 등의 내용이 아닌 좀 더 깊은 감정을 끌어올리게 만들어주는 작품입니다. 도대체 사랑과 정체성이 아니고서야 어떤 깊은 감정이 더 있을까 싶겠지만 저는 이 책을 읽고나서 정말 여러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그만큼 여운이 진하게 남는 작품입니다. 
 

줄거리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독자들은 "도영언니"의 시선으로 그 편지를 읽게 됩니다. 수브다니라는 특이한 이름의 진상 손님 덕분에 숨어 지내며 편지를 전해야 했던 주인공. 주인공이 있던 방 안에는 피부 살점들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방을 보고 놀랐을 언니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편지를 통해 설명합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경력을 살릴만한 직장을 구했고, 그곳은 솜솜 피부관리숍 이라는 인공 피부 이식을 해주는 곳이었죠. 수브다니는 전부터 계속 찾아와 자신의 피부를 금속으로 이식해 달라는 무리한 요청을 합니다. 수브다니의 정체를 알게되며 요청을 받아들임으로 벌어진 사건을 그린 이야기 입니다. 

 

편지 형식의 신선한 지문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는 처음부터 끝까지 "도영언니"에게 쓴 편지 형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런 형식의 장점은 누군가의 비밀 이야기를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죠.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며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킵니다. 단점도 있습니다. 소설 속 배경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느끼게 하기는 조금 어려울 수 있죠. 하지만 김초엽 작가는 특유의 담백하고 디테일한 묘사로 도영언니와 독자에게 생생한 현장을 선사합니다. 
 

매력적인 캐릭터 설정

초반부에서 주인공의 시선으로 보는 "수브다니"의 모습은 굉장히 제한적이라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어쩌다 한 번 마주친 적 있던, 인터넷에서 떠들썩한 그 사람. 가게에 자주 드나들던 손님. 이렇게만 비춰지며 그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이 동화됩니다. 현실 속 인간관계도 그러하듯, 신비로운 캐릭터만큼 매력적인 캐릭터는 없죠. 사건의 중요한 실마리를 가지고 있는 죽은 인물처럼 말이죠. 죽은자는 말이 없듯이, 수브다니를 편지로만 전해듣게 되며 도대체 어떤 진상짓을 했을까, 무슨 비밀이 있을까. 친한 동생은 왜 숨어서 이 편지를 보낸걸까. 궁금하게 만듭니다. 사실은 세상 사람들 중에서 수브다니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도 하죠. 처음부터 그는 로봇이다. 라고 다 알려주는 것이 아닌, 아무것도 모르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여러 복선들을 미리 보여주었기 때문에 로봇이라는 설정이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녹슬고 싶어요."
 
수브다니 자체의 설정도 매력적이었죠. 인간화 시술을 받았을지언정, 그의 대사는 그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로봇인지 중요하지 않게 돼버렸습니다. 글을 읽는 내내 고민했습니다. 기이한 생명력을 포기하고 죽음을 택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어떤 일들이 그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을까. 아니, 애초에 그는 훌훌 털어내는 마음일 수도. 남상아와 다투고 싸우는 모습, 사랑이라고 깨닫던 순간들을 상상해봅니다. 어쩌면, 남상아를 먼저 떠나보낸 수브다니의 3년은 이미 다 녹슬대로 녹슬었을 수도 있었겠다. 마음 추스릴 시간도 없이 복잡한 현실과 맞서야 했던 날들이 괴로웠을테죠. 
 
 

마지막으로

"수브다니의 여름휴가"를 읽으며 사람보다 더 사람같던 그의 마지막을 목격 했습니다. 상실감을 안고 살던 때의 감정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아픈건 아픈거고 다시 살아야 했던 날들. 어김없이 우편함에 꽂혀있던 관리비 통지서, 가짜 허기짐에 꾸역꾸역 밀어넣던 밥, 작은 원룸에 퍼지던 고양이 변 냄새가 더 비참하게 만들었죠. 
수브다니처럼 그냥 차라리 녹슬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던 거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하는 수브다니를 애도하며, 리뷰를 마치겠습니다.